해외 토큰 증권 산업 현황
우리보다 먼저 도입한 해외 STO 시장, 자율성 부족해 시장 활성화 안돼 / 매경기사 발췌
토큰 증권(이하 STO·Security Token)이 국내 제도권 내 편입이 공식화됨에 따라 시장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물론 금융투자업계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새로운 ‘게임 체인저’로 부상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아직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밖에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미래를 엿볼 수 있는 힌트지는 우리보다 먼저 시장을 조성한 해외 사례들이 될 수 있다.
미국, 싱가포르, 영국, 일본 등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STO에 대한 규제를 정립하고 제도적 인프라를 형성하고 있다. 일본은 STO에 금융상품거래법을 적용하여 제도권에 편입시켰으며 STO 시장 활성화를 위한 업계 주도의 STO 자율규제 기관이 존재한다.
글로벌 STO 시장 22조원 규모
토큰 증권 전문 연구기관인 ‘STO Market’에 따르면 시가총액 기준 글로벌 STO 시장은 2022년 4월 이후 급성장하여 2022년 하반기 하락장에도 불구하고 약 150억달러(19조4860억원)~200억달러(25조9860억원) 선을 유지했다. 2022년 기준 평균적인 시가총액 규모는 약 19억달러(약 22조847억원)다. 거래액으로 보면 2020년 새로운 토큰이 거래가 시작될 때를 제외하면 월평균 300만달러(약 34억원)가량의 거래가 이뤄졌다. 이후 2022년 4월까지는 총 거래량이 크게 상승세를 보였으나 2022년 하반기 반락하여 평균 거래량이 약 400만달러 수준을 기록하였다.
‘STO market’과 ‘Tokenizer’에 의하면 전 세계에는 약 63개 거래소에서 STO가 거래되고 있으며 주로 미국, 싱가포르, 영국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미국 15개, 싱가포르 6개, 영국 3개 거래소에서 토큰 증권이 거래된다. 대부분의 거래소는 규제당국의 인가를 받은 신규 업체들이다. 중앙화 거래소 외에도 5개의 탈중앙화거래소인 DEX에서 토큰 증권이 거래되고 있다. 2021년 9월 기준 STO 거래가 가능한 거래소의 숫자가 5개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셈이다.
토큰화 대상 자산군은 부동산, 채권, 사모펀드 등 다양하다. 미국의 ‘RealT’, 영국의 ‘LedgerEdge’처럼 단일 자산군에 특화된 거래소도 존재하고 여러 가지 자산군을 다루는 종합거래소도 있다. 단일 자산군을 취급하는 거래소 중에서는 주식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부동산, 채권을 취급하는 거래소도 눈에 띈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STO 거래가 가장 활발한 곳은 미국이다. 코인텔레그레프(Cointelegraph)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에서는 43건의 STO가 진행된 반면, 영국, 독일에서는 각각 1건, 5건에 그쳐 초기 시장을 선점했다. 다만, 이는 미국의 SEC가 토큰 증권 발행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기보다는 영국, 독일 등 다른 국가와 달리 디지털 자산 시장에 대해 증권법 규제를 적극적으로 적용해왔다는 점이 차이가 크다.
미국의 주요 STO 거래소는 tZERO, INX, Securitize Market이 있다. 이들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주요 비트코인, 달러 등으로 거래가 가능하다. 투자자가 토큰 증권을 보유한다면 일반적으로 수익 분배나 지분 인정 등의 권리를 얻게 된다. 이 중 가장 자주 언급되는 사례 중 하나는 INX다. 미국에서 STO는 전통적인 증권과 동일한 연방법을 준수해야 하는데 대다수가 Reg A나 Reg C와 같은 등록 면제조항을 주로 이용해 발행한 것과 달리, INX는 처음으로 SEC에 등록된 STO이기 때문이다. INX는 8500만달러의 자금을 조달하며 다른 STO 대비 큰 금액을 모집했고 투자자 범위 제한도 없다.
규제 이슈로 암호화폐보다 성장 부진
야심차게 출발한 STO 시장은 암호화폐와 비교했을 때 기대만큼 빠르지는 않았다. 단적으로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의 2022년 11월 말 거래량은 2억달러를 넘지만 tZERO는 180만달러에 그쳤다. 개별 자산의 측면에서 살펴봐도 1월 31일 기준 비트코인 일간 거래량과 시가총액은 각각 386억달러, 4393억달러이나, tZERO는 7469달러, 8490만달러로 규모 자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실패한 거래소들도 상당하다. 코빗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부터 약 70개 정도의 거래소나 기업들이 STO 발행이나 거래를 준비 중이었지만 약 47개가 사업을 중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은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ICO와 달리 STO는 법을 준수해야 하는 만큼 제한된 투자 상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또한 새롭게 설립된 전용 거래소를 통해 거래된다는 점도 성장이 더딘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고 말했다.
미국 내 토큰 증권 시장에서도 변화는 발생하고 있다. 과거 STO는 SEC 등록이 면제되는 규제하에서 주로 발행되었지만, INX 발행으로 SEC에 등록된 토큰 증권 사례가 존재하고 INX에서 4개 회사의 STO가 진행되는 등 자금 조달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미국의 사례를 통해서 살펴봤듯이 국내 규제당국의 토큰 증권 가이드라인 공개 이후 관련 시장이 국내 금융 시장에서 성장하는 데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다만 국내는 토큰 증권 시장이 조각투자 시장의 사례와 유사하게 증권사, 은행 등 제도권하의 금융기관과 함께 구성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거래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심수빈 연구원은 “투자자들의 토큰 증권 시장에 대한 접근성은 미국보다 더 좋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며 이는 관련 시장의 성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과 유사’ 금융기관 진출 활발한 일본
일본은 ICO를 금지한 국가이지만 STO에 대해서는 관련법을 개정하여 일찍이 제도권에 편입했다. 2020년에 자금결제법 등 관련 법 개정을 통해 토큰 성격에 따라 지급결제성 토큰은 자금결제법, 증권형 토큰은 금융상품거래법을 적용해 미국과 유사한 규제 방향을 가져갔다. 민간단체인 일본 STO협회는 정식 허가 라이선스를 주는 등 증권사를 중심으로 STO 표준화 절차에 착수하기도 했다. 이에 SBI홀딩스 등 다수의 금융기관이 STO 시장에 진출한 배경이다.
SBI그룹은 자회사 자금 조달 시 STO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프로세스를 효율화시켰다. 신설된 e스포츠 자회사의 자금 조달을 위해 보통주를 STO 방식으로 발행했다. 블록체인 스타트업인 부스트리의 플랫폼에서 증권형 토큰을 관리했다. 부스트리는 노무라 홀딩스와 노무라 종합 연구소가 설립한 업체로,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플랫폼을 통해 증권형 토큰을 발행, 유통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즈호 은행은 패밀리마트, 야마다 전기 등 일반 기업에 대한 채권을 STO로 발행하는 실증시험을 실시하기도 했다. 발행된 STO는 미즈호 증권을 비롯한 4개의 증권사가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판매했다. 실증시험의 성격상 개인투자자는 채권 발행 기업의 임직원으로 한정했다. 전통적인 자금 조달 방식과 달리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활용함으로써 투자자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점을 이용해 기업 마케팅을 전개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미쓰비시 UFJ 신탁은행은 케네딕스가 제공한 부동산 자산을 유동화하고 자사 블록체인 네트워크인 ‘Progmat’를 통해 공모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하기도 했다. 임대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해 투자자들이 분배를 받는 구조로 토큰을 인수해 투자자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역할은 노무라 증권과 SBI증권이 담당했다. 기존 리츠와 다르게 복수의 대형 부동산이 아닌 중소형 단일 부동산에 대한 유동화가 가능하다는 강점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이 외에도 실물 자산 외에 신용카드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STO가 발행하는 사례 등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일본 증권업계는 특히 현재 주식 시장의 활황에도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STO를 통해 사업영역 확장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STO협회 홈페이지
국내 상황 역시 일본의 모델과 비슷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현재 다양한 증권사와 금융투자사들이 기존 업체들과 손을 잡고 자체 플랫폼을 개발하거나 MTS를 통해 STO 거래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계는 STO 시장의 성공을 위해 무엇보다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유동성 확보가 시장 활성화에 큰 요인인 것처럼 다양한 상품과 시장 접근을 위해 일본과 같이 자율규제 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일본은 지난 2020년 5월 금융상품거래법을 개정해 STO를 주식과 동일하게 보고 있다”며 “국내와 비슷한 것 같지만 일본은 모넥스, SBI, 카부닷컴, 다이와, 노무라, 라쿠텐 증권 6개사가 조직한 일본 STO협회를 통한 자율규제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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